예견된, 반복된, 내몰리는 배송노동자의 죽음

녹색당

유일환 기자 | 기사입력 2020/03/18 [09:23]

예견된, 반복된, 내몰리는 배송노동자의 죽음

녹색당

유일환 기자 | 입력 : 2020/03/18 [09:23]

- 중노동으로 사망한 쿠팡맨을 추모합니다

 

▲ 녹색당    

[분당신문] 지난 12일 새벽, 배송 업무를 하던 ‘쿠팡맨’ A씨가 사망했다. A씨는 입사 4개월 차의 비정규직 야간 배송노동자였다. 고인은 5층 건물의 계단에서 고중량의 배송 물품을 반복해서 나르다 참변을 당했다.

 

이는 필시 예견된 죽음이었다. 그동안 쿠팡은 분기별 평가를 통해 쿠팡맨들을 1~9등급으로 나누는 ‘잡-레벨’ 시스템을 도입해왔다. 이 ‘잡-레벨’의 분기별 평가를 통해 해고되는 노동자는 100명 중 90~95명꼴이었고, 고용 불안과 정규직 전환의 압박에 쿠팡맨들은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고강도의 노동을 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을 경쟁으로 내몰면서, 등급 상향 심사의 최소 기준치 물량을 넘으려면 식사시간마저 갖지 못한 채 노동을 강행하도록 하는 끔찍한 노동 착취의 구조였다.

 

쿠팡의 성장에 따라 야간 배송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2014년 이전에는 쿠팡맨 한 명당 60~70가구를 담당했지만, 현재는 120~140가구가 한 명의 쿠팡맨 몫이 되었다. 올해부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쿠팡 플렉서’라고 불리는 자가용 배송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주로 도맡았던 신선식품 당일 배송 업무의 비중을 기존 ‘쿠팡맨’들에게 충분한 인원 충원 없이 늘린 것이다. 기존에 ‘쿠팡 플렉서’는 배송 건수로만 급여를 책정했으나, ‘쿠팡맨’들은 오로지 시간당으로만 급여를 책정하므로 쿠팡은 이들의 노동을 훨씬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중량인 식료품의 배송 업무가 늘어났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쿠팡맨 물량이 150~200%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는 더 열악해진 배송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주문한 식료품들이 기업과 국가의 방관으로 인해 동료 시민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참으로 참담하다. 더는 동료 시민들이 일하다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그렇게도 외쳐왔건만, 또다시 노동자의 예견된 죽음이 찾아왔다. 기업이 노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코로나19 사태에 방치된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정부와 국회에 있었다면, 상시 지속 업무의 비정규직화가 불가능했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한국에 있었다면. 이 안타까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쿠팡맨들은 6년간의 임금동결, 기만적인 경쟁 인센티브제(잡-레벨), 열악하고 강도 높은 노동, 야간배송, 구조조정에 가까운 자회사전환 등 수많은 쿠팡의 노동 탄압에 시달려왔다. 이 사건의 책임자는 바로 배송노동자들에 강도 높은 업무를 강요한 쿠팡과, 코로나19 사태에 방치된 배송노동자들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이다.

 

쿠팡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비정규직 사용을 중단하고, 기만적인 잡-레벨 시스템 대신 기본급을 인상하라. 또한, 2018년부터 진전이 없었던 노사 교섭을 반성하고 성실한 교섭 태도를 보이라. 그리고 정부와 국회는 지금 당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를 옭아매는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

 

1주일 뒤(3월 25일)면 쿠팡의 로켓 배송이 6주년을 맞는다. 소셜 커머스의 대표 주자로 화려하게 떠오른 쿠팡의 이면에 배송노동자들에 가해진 노동 착취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반드시 이 구조를 바꿔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죽음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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