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단지 건설 때 성남 본도심 '전통문화유산' 대부분 사라졌다!

성남학연구소 윤종준 상임위원 "성남시 근현대 문화유산까지 실태조사 필요" 제안

유일환 기자 | 기사입력 2020/11/09 [12:15]

광주대단지 건설 때 성남 본도심 '전통문화유산' 대부분 사라졌다!

성남학연구소 윤종준 상임위원 "성남시 근현대 문화유산까지 실태조사 필요" 제안

유일환 기자 | 입력 : 2020/11/09 [12:15]

-1993년 가스배관 공사중 파손된채 발견된 영창대군 묘지석
-왕자와 공주의 제사를 주관하던 수진궁은 어디로?
-봉국사 부근에 있던 법륜사와 하대원에 있던 고대의 교통로 대야원의 실체는?

 

▲ 성남문화원에서 열린 제25회 학술회의에서 김대진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분당신문]  광주대단지 건설 사업은 그 당시 최악의 주민생활공간을 보여주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의 분묘,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전통문화유산도 철저히 파괴되거나 멸실 된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4일 성남문화원 3층에서 열린 제25회 학술회의에서 성남문화원(원장 김대진)이 마련한  '광주대단지 주민생활 공간과 도시형성' 토론회에서 성남학연구소 윤종준 상임위원은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파괴가 진행된 것이 전통 충효 문화의 상징인 선조들의 무덤(묘, 산소)이었다. 태평동 일대에는 의령남씨를 비롯한 세거 문중의 무덤 630여 기가 있었으나 광주대단지 개발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광주대단지 사업 구역 안의 본보심에 있던 저명한 역사 인물들의 묘도 다른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1993년 태평3동 가스배관 공사 중 발견된 영창대군의 묘지석. 중장비로 인해 일부가 훼손됐다.

 

세종의 왕자 평원대군과 예종의 왕자로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을산군(者乙山君=성종)에게 밀려나 평원대군의 봉사손으로 입적된 제안대군의 묘, 선조의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의 묘를 비롯해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남유와 그의 아들로 정묘호란 때 순국한 남이흥 장군의 묘, 고려말 충신 음촌 김약시의 묘, 청백리 정대년의 묘 등 수많은 묘역이 사라졌다.

 

특히, 영창대군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제75호로 김약시와 그의 아들 김췌의 묘는 광주시향토문화유산 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정대년의 묘와 신도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8호로, 남이흥 장군 묘역 일원은 충청남도기념물 제52호로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 41점 등은 국가 중요 민속자료 제21호로 지정되어 모충관(慕忠館)에 전시되어 있다.

 

당진시에서는 남이흥 장군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충남의 대표적인 축제로 키워나가고 있다. 2019년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31회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1993년에는 영창대군의 묘지석이 태평3동에서 가스배관 공사를 하던 중 중장비에 파손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광주대단지 당시의 문화재 정책 또한 부실했음을 생생하게 증명해 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야원(大也院)은 고대의 교통로에서 말을 이용하는 역(驛)과 함께 숙식을 할 수 있는 원(院) 시설의 하나로 하대원에 있었고, 세종과 세조 임금 등이 군사훈련을 하러 와서 머무르기도 했던 곳이다. 광주대단지 건설 당시에는 문화유적의 보존에 대한 관심은 물론, 최소한의 지표조사나 현황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69년부터 불과 2~3년 사이에 15만 명 가깝게 이주하면서 주민생활은 피폐해 질수 밖에 없었다.

 

성남학연구소 윤종준 상임위원은 "광주대단지 관련 자료를 모으기 위해 노력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광주대단지 사업을 추진하던 당시의 분묘,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한 문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일제 강점기에 만든 문서 중에서 봉국사 부근에 있던 법륜사(法輪寺)를 서울로 이전하는 것을 허가한 문서나 조선의 능원 묘에 관한 문선, 광무(고종) 5년인 1901년에 작성된 영창대군 위토 전답문서, 강희 14년(1675, 숙종 원년)에 작성된 명혜공주 방에서 사들인 면세토지문서 등이 남아 있는데, 광주대단지 당시에는 문화재 관련된 문서가 전혀 작성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고 보여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윤 상임위원은 "광주대단지 건설로 사라진 문화유적을 조사해야 하고, 이밖에 광주대단지 건설 이전인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문화유산을 통해 본도심 지역이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숙종의 누나인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가 고양시 서삼릉 구역으로 1936년에 이장됐다. 두 공주의 원찰이 봉국사였고, 평원대군과 제안대군 등 왕자와 공주의 제사를 주관하는 수진궁(壽進宮)이 있어서 수진동의 지명유래가 되기도 했다.

 

이전 연구 조사에서 분묘의 경우 숯골과 독정리(태평동과 신흥동 일대)에는 630여 기의 묘가 있었다는 구전 사실과 그중에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의령남씨 묘역의 이전사례와 음촌 김약시로 대표할 수 있는 광산김씨 사례 등만의 조사가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윤 상임위원은 "성남 인물 조사를 통해 묘의 위치가 기록된 사례 등을 통해 성남시 61개 성씨 모두와 성남시 전체 면적 안의 묘역 이장 현황, 그리고 낙생행궁과 대야원, 법륜사, 수진궁 등의 유형문화재가 사라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통계를 내는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 광주이씨 인물 중 광천군 이극증(李克增)의 묘역은 분당구 야탑동에 있었으나, 1991년 분당신도시 개발로 인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산 37-1번지로 이장했고, 그 묘역의 석물이 광주시향토문화유산 유형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따라서 본도심 뿐만 아니라 성남시 전역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할 필요가 있고, 특히 묘역 외의 문화재가 많은 성남시에서는 근현대 문화유산까지 포괄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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