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가 요새 도시개발공사 설립 여부를 놓고 소란스럽다. 앞뒤 안보고 어떻게든 설립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세력이 있는 반면 반대 진영의 논리도 만만하지 않아 힘겨루기를 통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3일 도시개발공사 설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성남시의회에서도 찬성과 반대진영의 힘겨루기가 벌어져 도시개발공사설립 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산회했다. 이런 도시개발공사 설립 공방을 지켜보는 시민대중들은 과연 성남시가 그동안 ‘누구를 위한 도시개발공사 설립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표시하고 있다.
우선 성남시의 대장동과 1공단의 결합개발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도시개발공사 설립의 대외 명분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확실성 시대에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경제 전망의 경우 더욱 그렇다.
도시개발공사는 한번 세상에 나오면 설령 적자투성이로 변해 쓸모없게 되었다고 쉽게 쓰레기소각장에다 버릴 수 있는 성질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라퐁텐의 우화에 나오는‘우유 파는 여자와 우유단지’이야기가 우리에 던지는 메시지를 주목해야 한다.
'페레트'라는 목장 아줌마는 우유를 팔기 위해 우유단지를 머리에 이고 읍내로 나간다. 읍내에 가면서 페레트는 우유를 팔아 부자가 되는 상상에 빠져든다. 우유를 판돈으로 계란을 사고, 계란을 부화시켜 닭을 기르고, 닭을 팔아 돼지를 키우고, 돼지를 팔아 젖소를 산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페레트'는 젖소들 속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만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게 된다. 그 순간 우유단지가 머리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서 페레트가 꿈꾸었던 닭도 돼지도 젖소도 모두가 다 물거품이 되었고, 남편에게 야단맞을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지금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추진하는 성남시와 그에 동조하는 특정 정파의 모습이 우화 속에 나오는 목장 아줌마 페레트를 연상케 하고 있다. 성남시가 도시개발공사 설립에 문제가 없다며 내놓은 사업성 분석을 보면 희망사항을 떠나 어찌보면 몽상 수준에 가까울 정도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성남시는 위례신도시내 분양아파트 건립 사업을 통해 1천100억원의 순익을 낼 수 있고, 동원동 산업단지 조성에서 27억원의 순익을, 그리고 대장동과 1공단의 결합개발 사업을 통해서는 137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성남시의 예상대로 미래의 경제상황이 돌아갈 것이라는 확실한 객관적 전망은 어디에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한 손익분석 지표는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놓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럽발 경제위기 여파 등으로 세계적인 장기불황이 점쳐지는 상황 속에서 객관적인 근거도 없는 수도권지역 개발여건의 호조를 이유로 들면서 지자체가 부동산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미래를 담보로 한 매우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는 설립반대 진영을 비롯한 지역사회 일각의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되면 기본적으로 조직유지 차원에서라도 개발사업을 만들 수밖에 없는 만큼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이 때문에 성남시의 개발수요 등을 감안하면 재정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을 가진 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하는 것보다 현재의 시청 조직인 도시개발사업단과 산하기관인 시설관리공단 등을 활용해 개발사업들을 추진해도 무리가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국내 주요 지자체가 설립해 운영중인 도시개발공사의 운영실태중 부채현황을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새누리당협의회가 제시한 자료에 보면 서울도시개발공사 16조원, 인천도시개발공사와 경기도시개발공사 각 7조원, 용인도시공사 1천300억원, 화성도시공사 1천200억원, 김포도시공사 5천600억원 등 대부분의 도시공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인해 ‘빚구덩이’에서 신음하며 부도(不渡)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당초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재정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하며, 성남시처럼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야심차게 추진했던 황은성 안성시장이 최근 ‘시민의 의견과 재정여건을 감안해 도시공사 설립을 보류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대다수 성남시민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과 동의도 없이 인허가권을 가진 행정기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성남시의 도시개발공사 설립은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행정의 표본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다.
특히, 시민들로부터 한시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인 시장과 일부 시의원들이 시민 대다수의 동의도 없이 그 권한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그것은 위임된 권한의 궤도와 한계를 벗어난 일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추진하는 성남시는 ‘공공성’과 ‘수익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설령 설립시기가 늦춰진다하더라도 여론수렴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를 통한 신중한 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남시는 이미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까지 선언한 상태다. 그런 성남시가 장밋빛 환상에만 빠져 많은 시민대중이 반대하는 도시개발공사의 설립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채 도시개발공사가 설립돼 출범한다면 재정위기라고 스스로 진단한 성남시의 현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성남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두고두고 갚아야할 몫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성남시장은 귀를 기울여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