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납동 토성, 방어용 요새가 아닌 백제의 도성 …남쪽에는 몽촌토성 축조

이미옥 기자 | 기사입력 2023/04/17 [11:21]

퐁납동 토성, 방어용 요새가 아닌 백제의 도성 …남쪽에는 몽촌토성 축조

이미옥 기자 | 입력 : 2023/04/17 [11:21]

 

▲ 풍남동 토성은 흙은 다져서 쌓아올린 판축 토성이었고,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축조된 성이다.

 

[분당신문] 풍납동 토성은 백제 초기 '한성'의 토성으로 1500여 년이 넘도록 잠들어 있던 위례성이다. 

 

12세기 중엽에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백제 초기의 왕성인 위례성의 위치를 알수 없다고 적혀 있지만, 13세기 말엽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위례가 직산(지금의 천안)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조선시대 전기에 편찬된 역사서는 모두 위례성을 지금의 천안이라고 적어 놓았지만,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고증을 통해 잘못된 추정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근대 이후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천안지역은 마한의 중심 소국이던 목지국이 있었던 곳이며, 백제국의 중심지는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 일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백제의 도성 풍납토성과 남쪽에 위치한 방어용으로 축조된 몽촌토성.

 

한 때 남한산성 내부의 광주 군치(조선시대 군청)가 본래의 하남 일대에서 옮겨 온 것이 확인되자 위례성이 지금의 하남시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몽촌토성 일대가 발굴되자 백제의 첫 도읍인 위례성이 몽촌토성으로 비정되었다가, 마침내 1990년대 풍남동 토성이 발굴되면서 현재 풍납동 토성이 하남 위례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제는 국가체제가 발전하면서 '한성'을 양궁성 체제로 운영했다. 정궁은 풍납동 토성으로 추정되는 북성(北城), 별궁은 몽촌토성으로 추정되는 남성(南城)으로 이뤄졌다.

 

풍납동 토성은 흙은 다져서 쌓아올린 판축 토성이었고,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축조된 성이므로, 단순한 방어용 요새가 아닌 백제의 도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풍납동 토성은 백제 초기 '한성'의 토성으로 1500여 년이 넘도록 잠들어 있던 위례성이다.

 

풍납동 토성의 남쪽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남한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 능선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산성이다. 몽촌토성은 백제 한성 후기에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올림픽공원내에 위치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장수왕이 3만 대군을 보내 백제의 도읍인 한성의 북성을 7일 밤낮으로 공격해 함락 시킨후, 남성으로 옮겨 공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각각 풍납동 토성와 몽촌토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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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도 2023/04/18 [09:59] 수정 | 삭제
  • 오두막집 몇개 발견되고 기와도 올릴 수 없는 기둥으로 지은 집인데 무슨 왕성이라고 거짓 뉴스로 국민을 속입니까? 제발 좀 검증좀 하시고 기사를 쓰시기 바랍니다.
  • 팩트 2023/04/18 [09:14] 수정 | 삭제
  • 가짜 뉴스좀 그만 퍼트리세요. 풍납토성이 무슨 왕성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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