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예산사태를 빚어온 성남시의회가 7일 임시회를 열어 2013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결과, 전체 의원 34명 중 20명이 찬성했으나, 14명이 반대하면서 가까스로 통과했다. |
그러나 준예산 사태가 휩쓸고 간 성남 도심 곳곳에는 볼썽사나운 상흔(傷痕)을 드러내고 있다. 특정 정당인을 비방하는 불법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렸는가 하면 출처불명의 휴대폰 괴문자가 대량 발송되기도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져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막판에는 시민 불편해소를 목놓아 외치며 예산안 처리의 시급성을 주장하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예결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정작 본회의 표결에서는 새해 예산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편이 갈린 민심 또한 뒤숭숭하기는 여전해 앞으로 상당기간 준예산 사태라는 매머드급 태풍이 휘몰아쳤던 성남에는 그 후유증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성남시에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상 처음이라는 준예산 편성 사태가 현실화되자 도시 곳곳에 안내문이 부착되고,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자 많은 시민들이 헷갈릴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시의회 본회의가 열려 최대 쟁점이었던 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이 표결을 통해 ‘보류 결정’으로 결말이 나면서 의회 파행과 준예산 사태는 종식되었지만 그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여 적잖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공무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남시는 이번 준예산의 피해를 시민들에게 알린다는 명분으로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광속행정의 부작용인지 몰라도 시장 담화문이 성남시 안내문으로 명칭을 바꾸기 위해 급하게 덧씌워진 전단지를 시민 왕래가 빈번한 아파트 출입구 등에 부착하느라 새벽까지 동원된 일선 공무원들을 비롯해 시설관리공단 등 산하기관들도 준예산 사태가 불러온 피해를 입증하겠다며 각종 강습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등 경쟁적으로 가세하고 나서는 촌극 아닌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켠에서는 ‘호들갑’이라는 비아냥조의 목소리도 나오기도 했지만 현수막 제작업체가 반짝 특수를 누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 성남시 전역에서 전개된 상황들은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탈표를 기대하고 표결을 요구했던 민주통합당
사실 이번 준예산 사태 촉발의 핵심은 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의 표결처리 여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외견상 의석 분포로는 표 대결에서 다수당인 새누리당을 이길 수가 없는데도 소수 여당인 민주통합당이 오히려 본회의에서 표결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수 여당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우러나왔던 것이었을까.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탈 가능성을 기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별의별 추론과 경우의 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 것도 사실이다. 각종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고, 지역은 찬성과 반대의 두 패로 갈라진 채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소속 의원의 이탈표를 우려한 새누리당은 막판까지 협상을 통한 민주통합당과의 합의처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새해 예산안 처리 시한을 한시간여 앞두고 도시공사설립 조례안 처리를 둘러싼 양당의 합의안이 파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니 끝내 준예산이라는 성남시 사상 초유라는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이후 일주일간 성남시에서 벌어진 각종 상황들은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평소에는 존재감을 볼 수 없었던 각종 동네 단체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들고 일어나 준예산 사태의 책임을 시의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에 돌리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또한 수많은 공무원들이 페이스북 등 SNS 등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전개한 숨막히는 여론홍보전은 사이버전쟁을 방불케 하기에 충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남시장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이용, 각종 정치적 수사를 총동원해 이번 준예산 사태의 모든 책임을 새누리당으로 돌리며 ‘세상 망치는 새누리당…’ 등의 원색에 가까운 비난 용어까지 구사하는 강공 일변도로 일관, 정치력 발휘를 통한 준예산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는 많은 시민들의 바람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새누리당 또한 이유야 어떠하든 간에 시의회 다수당으로서 제 역할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못해 성남시 역사에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라는 불명예를 초래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의회 의장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이번 준예산 사태를 불러온 시의회 파행의 근원적인 시발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시의회 의장이 아니던가. 그래서 애초부터 시의회와 집행부간 그리고 시의원간 갈등조정자로서 의장의 정치력 발휘를 기대하기는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6대 시의회 후반기 내내 의장이 풀어야할 결코 쉽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는 평가다.
이제 사실상 성남시장과 새누리당 의원들간의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둘러싼 ‘7일 전쟁’이라고 불러도 될법한 일주일간의 ‘준예산 전투’는 끝이 났다. 그러나 완전한 종전(終戰)이 아니라 휴전(休戰) 상태에 들어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도시개발공사 설립이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초침이 움직이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보류’ 상태에 놓여있어 그렇다.
이 때문에 도시개발공사 설립문제가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시의회 파행의 재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시의회 다수당과 집행부가 이번 준예산 사태에서처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 채 사사건건 대립하는 한 성남시 발전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런 낡은 정치의 패러다임을 탈피해 상생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행부의 수장인 성남시장의 고뇌에 찬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호 소통하지 않고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같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와 같이 지역사회에 엄청난 분란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이번 준예산 사태에서 교훈으로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준예산 사태와 관련해 들어간 행정력과 이에 따른 금전지출 등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성남의 대통합을 저해하는 분열주의적 행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시의회 차원의 ‘준예산 사태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을 적극 검토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를 또 다른 분열주의가 아니냐는 시각으로 접근할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준예산이라는 돌발 사태에 대한 행정기관의 위기 대응자세를 살펴서 과(過)가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 마련과 함께 대통합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찾아내는 방편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공사설립 추진하다 중단했던 안성시
예로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성남시는 이런 우(愚)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같은 경기도내 지자체인 안성시가 얼마전 도시공사 설립을 추진하다 중단했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남시민의 에너지를 결집시켜 시너지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도 모자란 마당에 시민들을 편갈라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통한 대승적 차원의 ‘아름다운 결단’이 거듭 요구되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문득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준예산 사태를 통해 과연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성남시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그룹인 성남시장과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시의원들은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다.【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