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시장이 이례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성남일보에 '측근'이란 표현을 놓고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중재위 조정 신청을 했다. |
#2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이다 보니 이들 사이에 견제를 통한 인사가 이뤄지길 기대하기도 힘들다.(한국일보)
우리가 아침이면 접하는 국내 신문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일부이다. 이 두 신문 기사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측근’이라는 용어이다. 그런데 요즘 난데없이 성남에서도 측근을 둘러싼 논쟁이 법률적인 판단을 받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면서 이 ‘측근’(側近)이라는 용어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성남시가 성남지역 인터넷신문의 대표주자격인 <성남일보> 기사를 문제삼아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요청하면서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예산지원을 받는 시민사회단체인 의제21의 A사무국장이 시의원과 관련해 괴문자를 대량 발송해 경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을 성남일보가 보도하면서 A사무국장에 대해 이재명 시장 측근이라고 표현했다. 성남일보의 기사 제목은 ‘이재명 시장 측근, 괴문자 발송 혐의 경찰 조사’이다. 이를 두고 성남시가 ‘A사무국장은 이 시장의 측근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이를 문제삼아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한 것이 대강의 요지라고 한다.
측근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측근(側近)이라 함은 △곁의 가까운 곳 △윗사람을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사람 △어떤 사람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 등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이번 측근 논쟁은 사실 유력 정치인의 경우 측근이 없는 인사가 과연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존재하는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성남시장의 경우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유력정치인으로서 분류되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와 뜻을 같이하고, 신임을 받는 인물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측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nonsense)가 아니면, 모든 것을 홀로 알아서 해결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정치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레토릭(rhetoric)에 불과한 억지이든지 둘중에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정치인에게 측근이 없다는 주장은 레토릭에 불과한 억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민선5기 이재명 시장 취임 이후 성남시가 특정 언론사의 보도와 관련해 특정 표현들을 문제 삼아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면서 언론자유 침해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덩달아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유독 <성남일보>라는 언론사에 집중된듯한 성남시의 언론중재위 제소라는 법적 대응을 과연 정상적인 피해구제 신청이라고 바라보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 앞선다.
성남시는 당연히 언론의 보도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거나 여러 가지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경우 법에 보장된 절차에 따라 피해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언론중재법에 의해 설치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당사자인 성남시야 억울하겠지만 공교롭게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대상이 이번에도 <성남일보>라는 특정 언론사라는 점은, 성남시가 단지 피해구제를 위한 차원에서 제소를 했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더욱이 성남의회 시의원이 의사당에서 행한 5분 발언 전문을 언론에 게재한 것을 두고 변호사까지 선임해 <성남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나선 성남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은 과연 어떨지 궁금할 뿐이다.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 같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성남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면서도 외면한 채 언론중재위 제소라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했다손 치더라도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고사성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처럼 아예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언론 재갈 물린다는 의심받을 행위 아예 하지 말아야
그럼 <성남일보>가 기사에서 사용한 표현이 언론중재위에 제소당할 정도로 잘못된 용어를 선택해 성남시에게 피해를 입혔던 것일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그런 표현도 못하면 언론사에게 입을 닫고 손 놓은 채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이야기인가’에서부터 ‘그래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용어선택을 해야 한다’까지 말이다.
하지만 성남에서 보통 십수년 넘게 살아왔던 시민들의 경우 현재의 성남시장이 시민활동가 시절을 기억한다면 이번 <성남일보>의 측근이라는 표현에 대해 과연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어쩌면 측근이 아니라, 최측근(最側近·어떤 사람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니까 하는 말이다.
이번 성남시의 언론중재위 제소를 지켜보면서 논어의 선진편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하기 그지없다. 일반인들은 해물라면을 끓이면서 욕심을 부려 여러 가지 재료를 너무 많이 넣어 해물라면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때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데, 하물며 100만 성남시민을 위한 시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야 위정자가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잔소리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