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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거울어깨가 많이 좁아진 아버지를 지금도 근사하게 비춰 주는 거울
정은영  |  webmaster@bundan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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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6  10: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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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영
[분당신문]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한 날은 아버지께서 약주를 거나하니 잡수고 집에 오셨다. 가족들 모두 저녁을 먹고 티비를 시청하던 중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그땐 그랬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는 일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나는 일찍 잠이 들었고 건넌방의 아버지는 티비 곁에 촛불을 켜고 보대낀 속을 꺽꺽 달래던 중에 잠이드신 모양이다.

"악~불이야~" 안방에서 어머니의 외마디 비명이 들였다. 집안이 소란스러워 졌고 가족들은 다투어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잠결에 내 방문을 열고 마루를 건너 안방 윗문을 열었다. 티비에 시커먼 불이 붙었고 그 불은 커튼에 옮겨 붙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롱문을 열고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어 티비를 감싸안고 들어서 마당에 팽개쳤다.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마당 가장자리에서 타들어가는 티비 불빛 주변으로 자연스레 가족들이 모여들고 누군가 취하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커다란 거울을 들고 마당가에 서 계셨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타박이 아버지께로 향했다. "아니 그놈의 거울이 머다고 딸랑 그 거울을 들고 나왔당가" 사실 나도 좀 그 상황이 웃음이나긴 했었다. 이어서 바로 보드라운 시선으로 내쪽으로 향한 어머니는 "어디 다친데 없냐. 막둥이가 큰일혔다. 안그렸으믄 집 다 탈뻔 했구나. 발가락에 피난다. 잉. 어디보자…" 짧지않은 기간동안 나는 집과 동네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었다. 반면 집안을 닦아내는 손길 한번 또 한번에 덧대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아버지는 묵언수행으로 힘겹게 받아내야 했다. 검은 그으름이 모두 닦여질 때까지 평생을 큰아들 편이시던 할머니마저도 침묵하셨다.

   
▲ 어깨가 많이 좁아진 아버지를 지금도 근사하게 비춰 주고 있는 마루 벽 아버지의 거울이 떠오르곤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커다란 거울은 안방에서 자리를 옮겨 마루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거울은 이 집에 이사올 때 지금은 돌아가신 큰고모부께서 선물한 것이니 이집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 술에 취한 어느 날 그날밤의 상황을 유추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취중에 일어나 불길을 보고 출입구를 찾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미닫이문 옆에 걸려 있던 거울이 불빛에 환하게 어른거려 문으로 여겨졌고, 그 문을 힘겹게 여는 과정에서 거울과 씨름을 하시다 거울을 통째로 들고 나오신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요즘 나 또한 어떤 경우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의 크고 작은 실수로 코너에 몰릴 때가 있다. 닳아 얇아진 위엄을 떨거나 웃음으로 넘기기는 하지만, 어깨가 많이 좁아진 아버지를 지금도 근사하게 비춰 주고 있는 마루 벽 아버지의 거울이 떠오르곤 한다. 아마도 그것은 돌고도는 아버지들의 유산인가보다. 허허….

글쓴이 정은영은 전라남도 광양의 작은 마을에서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양읍내에 있는 마을문화놀이터 '공감22'을 통해 주말마다 영화 상연과 함께 길거리 공연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등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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