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시원, 바이칼 원주민을 배우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8)

백왕순(전 내일신문 기자) | 기사입력 2018/07/18 [08:58]

한민족의 시원, 바이칼 원주민을 배우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8)

백왕순(전 내일신문 기자) | 입력 : 2018/07/18 [08:58]

   
▲ 모든 생명의 모태 바이칼.
[분당신문] 일곱째날(7월16일), 어제 밤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을 보다 잠이들어 조금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바이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아침. 나와 바이칼은 하나가 되었다. 모든 생명의 모태 바이칼. 나는 생명의 원천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바이칼 ~~~

9시30분 숙소를 출발해서 알혼섬 북부탐방에 나섰다. 우아직을 타고 사자와 악어 바위가 있는 '뉴르간스크'로 갔다. 그곳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과 차를 파는 브리야트족을 만났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브르한 그림과 차를 사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다시 우아직은 숲길과 비포장 도로를 울렁거리며 사간휴슌, 독수리 삼형제 바위로 갔다. 독수리 삼형제의 전설이 있는 바위다. 독수리는 죽은 인간의 영혼을 하늘나라에 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간의 살을 먹으면 안되는데, 죽은 시체를 먹어 벌을 받았다고 한다.

   
▲ 숲길과 비포장 도로를 울렁거리며 사간휴슌, 독수리 삼형제 바위로 갔다.
일행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뻬씨안까'에 도착했다. 당시 독일, 일본, 폴란드 포로 5천~7천여 명이 있었으며, 바이칼의 생선인 '오므르'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인도 일본 포로 속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공장터는 흔적도 없고, 선착장만 일부 남아있었다.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우리는 12시가 다 되어 최북단 하보이 곶에 도착했다. 기사들이 밥을 현장에서 준비하는 동안 일행은 수천길 낭떨어지인 '말라에모래'와 '발쇼에모래'를 트래킹했다. 가는 길에 들꽃과 성황당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이곳도 샤머니즘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잠시 앉아 좌정하고 자연과 하나되어 살았던 선조들을 생각했다.

브리야트족은 이곳을 호수가 아니고 바다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도 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인당수가 있고, 브리야트족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도 있다.

   
▲ 일행은 수천길 낭떨어지인 '말라에모래'와 '발쇼에모래'를 트래킹했다.
사냥꾼인 '호리도이'가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조 3마리가 내려오더니 선녀가 되어 바이칼에서 목욕을 하는 관경을 보게된다. 호리도이는 선녀 중 한 명의 옷을 숨기자, 백조가 되어 날아갔으나 1명은 날아가지 못하고 사냥꾼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둘은 11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브리야트 11개 부족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중 막내는 계속 동남진해서 부여를 만들고, 고구려 세운 동명성왕이라고 한다. 이것이 브리야트족의 전설이다. 물론 선녀는 나중에 옷을 찾아 백조가 되어 하늘 나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일행은 기사분들이 야외에서 만들어준 현지식을 먹고 사랑의 언덕으로 향했다. 마치 여자가 바이칼을 향해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브리야트족은 이곳을 생명의 근원지라고 한단다. 오묘했다.

탐방은 마친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 수영복을 입고, 생명의 모태 바이칼로 들어갔다.

   
▲ 탐방은 마친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 수영복을 입고, 생명의 모태 바이칼로 들어갔다.
한민족과 바이칼

바이칼이 우리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추측은 여러측면에서 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지질학적 면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빙하기 때 바이칼은 온천이 나오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구석기인들은 혹독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바이칼 주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해빙기가 되어 물이 불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하했고,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만주와 한반도까지 와서 정착한 것이다. 지금도 바이칼은 지진활동을 하는 내륙단층지대이고 온천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생태학적 관련성이다. 고구려나 고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Khori 또는 Qori)나 '고올리'(Kholri)에서 유래된 말로서,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면서 살아온 코리족(야쿠트족)을 비롯한 순록 유목민 일파가 순록의 먹이인 이끼의 길을 따라 만주지역과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록민족기원설'이라고 한다.

세번째는 체질인류학적인 측면이다. 몽골 만주 한국 브리야트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인이 매우 가까우며, 바이칼 주변의 브리야트인과 아메리카 인디언, 한국인의  DNA가 거의 같다고 한다. 브리야트족의 경우 몽골반점이 있고, 생김새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

끝으로 문화면에서 샤머니즘의 고향이 바이칼이다. 성황당, 고시레, 곰방대, 씨름 등등 무수히 많다고 한다.

이제 조금씩 유적들이 발굴된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문화적 협력을 통해 우리의 시원을 밝혀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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