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들과 함께 떠난 자유여행, 시코쿠를 걷다

“스미마셍~”. “코레 구다사이~”면 안 될 게 없었다

정은영 | 기사입력 2019/03/08 [13:22]

오랜 친구들과 함께 떠난 자유여행, 시코쿠를 걷다

“스미마셍~”. “코레 구다사이~”면 안 될 게 없었다

정은영 | 입력 : 2019/03/08 [13:22]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살아 온 친구들과 돈을 모았다. 그리고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어디에 있든 일생을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우린 내내 기분이 좋다. 그리 만나고 또 할 말은 머 그리 많은지. 고향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느 길도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다. 자유롭다. 우린 시코쿠를 걷는다.

   
▲ 8명, 그렇게 숙소를 구하고, 올 시코쿠 레일 패스를 끊고 우린 3박 4일의 시간을 향해 떠났다.

[분당신문] 첫날(2월 21일), 어릴 적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에 있다면 그 시절 친구들과의 여행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각자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도 추석이나 설 명절이 오면 빠짐없이 만나던 고향 친구들과 몇 해 전부터 달에 5만원, 이체 통장을 만들었다. 어릴 적 친구들의 면면이 그렇듯이 꼬박꼬박 내는 놈, 내다가 목돈으로 내는 놈, 한 번도 안 내다가 닥쳐서 내는 놈, 그것이 우리다.

지난 추석 모임에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마침 그즈음, 시코쿠 순례길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터라 일본 본섬 4개 중 가장 작은 시코쿠를 제안했다. 여행 지역보다 자유여행에 대한 우려가 친구들에게 스쳤지만 늘 우리가 하던 대로 호기롭게 의견을 모았다. 여행 5개월을 남긴 시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연말이 지나며 계획은 흐릿해지는 듯했다. 그때 한 친구가 단톡방에서 여행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의 계획은 다시 불이 붙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불이 붙었을 때, 비행기 표를 뒤돌아보지 않고 끊는 것이다. 문제는 여행 참여자의 문제였다. 처음엔 친구들끼리만 갈까도 했지만, 아내를 대동하자는 의견이 나오면서 여행의 중심은 요동쳤다.

짠내투어가 편안한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단톡방에 있던 친구 중 미국에 있는 친구를 제외한 서울 친구 한 명이 사업이 바빠서 참가가 힘들게 되었다. 또 두 친구의 아내가 여타의 이유로 참가하기 힘들게 되었다. 8명, 그렇게 숙소를 구하고, 올 시코쿠 레일 패스를 끊고 우린 3박 4일의 시간을 향해 떠났다. 아니 어릴 적 모습으로 최대한 돌아가기 위해 가능한 한국인이 적은 낯선 곳으로 갔다.

시코쿠에 하늘로 들어가는 직항 길은 2가지다. 인천 – 마쓰야마 제주항공편과 인천-다카마쓰 서울항공이다. 우린 두 도시를 모두 여행할 계획이므로 2가지 모두 괜찮았으나 모두 지방에서 올라가야 해서 제주항공편이 대중교통편과 맞추기가 수월했다.

2월 21일 오전 9시 30분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 도착, 처음부터 공항이 떠들썩하다. 아침도 못 먹고 출발했으니 밥부터 먹자. 시종일관 웃음연발이다. 1시간 30분 비행 끝에 도착한 마쓰야마 공항은 바닷가에 인접한 여수공항 정도의 크기는 작지만 맑고 푸른 하늘이 탐이 나는 곳이다.

입국 수속 중에 한 친구는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을 뻔한 해프닝도 있었다. 잘못 걸리면 몹시 까다로웠다. 공항 로비에 나오자마자 우린 귤의 고장 마쓰야마를 느끼기 위해 귤 음료를 마셨다. 바로 공항버스를 타고 JR마쓰야마역으로 향한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레일 패스 교환을 끝내고 기차 시간을 확인한 후 시간이 많지 않아 역사 끝에 있는 노포(喜多方)에 서둘러 들어갔다. 라멘과 치킨, 그리고 생맥주를 시켰다. 시원한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니 그제야 처음 밟은 땅에 대한 긴장감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라멘은 짜서 못 먹을 정도다. 재작년 여름, 후쿠오카에서 맛있게 먹은 이치란 라멘이 생각났다.

   
▲ 체크인이 간단히 끝나자 우린 짐을 던져놓고 바로 시내로 나갔다

마쓰야마에서 다카마츠까지는 기차로 2시간 20분 거리다.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창밖 어느 작은 해안 마을을 보며 새벽부터 서둘러서인지 우린 스르르 어둠과 함께 잠이 들었다. 마쓰야마역의 시골스러움에 비하면 다카마쓰역은 상당히 도회적 느낌이다. 5분을 걸어 다카마스성 인근에 있는 지역 전차인 고토덴 다카마스치코역으로 향한다. 8명이 끄는 여행가방의 바퀴소리 요란하게 입성을 알린다. 설레는 마음 가득하다. 두 정거장을 가면 가와라마치역이다. 레일패스 하나면 만사 통과다. 다카마스에서의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중앙공원 앞의 도미인 다카마스. (Dormy Inn Takamatsuchuokoenmae Natural Hot Springs)

그런데 처음부터 엇박자다. 여행 오기 전 각자가 안내하기로 한 구간이 있었는데 서로 다른 길이 맞다 우기는 자유여행의 흔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날은 어두운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미인 다카마츠는 근처 한 곳을 더 오픈했다. 우리가 머물 곳은 최근 오픈한 곳인데 대부분 여행자가 역에서 조금 더 가까운 기존 도미인을 찾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서로 멀지 않아 문제 될 건 없지만.

체크인이 간단히 끝나자 우린 짐을 던져놓고 바로 시내로 나갔다. 퇴근 시간 인파와 맞물려 거리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우린 천천히 걷다가 후쿠다마치의 해산물요리점(ものっそ)에 들었다. 술이 땡겼고, "하치~ 하치~" 외치며 손가락을 보여주자 겨우 8명 자리가 있었다. 앉은 자리의 분위기가 좋았고 모듬회 안주에 모든 사케 종류를 다 마시겠다는 의지로 도쿠리로 1번부터 10번을 넘기며 품평을 했다. 우리의 취기만큼이나 첫날의 밤은 유쾌하게 무르익어갔다.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하는 모두의 장난기는 흥을 돋우었다. 아내들도 자연스레 잘 어울렸다. 서빙을 하는 친구도 유쾌했다. “스미마셍~”. “코레 구다사이~”면 안 될 게 없었다. 전철 지나는 건널목 땡땡 소리와 함께 어릴 적 친구들과 거침없던 시절의 향기가 피어났다.

   
▲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이 사누키 우동의 고장 가가와현 아닌가. 틈만 나면 우동을 먹을 것이다.

1차를 나와 나는 친구들의 손을 이끌었다. 2차는 인근에 유명하다는 수제우동집 츠르마루(鶴丸)로 향했다. 우동 먹방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이 사누키 우동의 고장 가가와현 아닌가. 틈만 나면 우동을 먹을 것이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일행들은 가케우동, 나는 이 집의 인기 우동을 물어 카레우동을 시켰다. 면발의 탱글함이란. 카레우동의 감칠맛이란. 그 위의 튀김의 탱탱바삭함이란.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심야 우동집은 한잔 걸친 직장인들의 속풀이 한잔으로 12시가 가까워지는데도 문전성시였다.

3차는 숙소로 향하는 길가 이자카야를 찾아 들어간다. 가게 안 젊은이들의 소란이 우리의 취기와 딱 맞물렸고, 우린 “고레 구다사이~”를 수없이 고레 고레 외치며 입가심을 하며 여행의 첫날을 마무의리~하였다. 새벽 1시였다. 옛이야기가 나뭇잎처럼 겹쳐 쌓였으며 중간 중간 서로를 골렸고, 좋다 좋다를 외쳤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자유로운 여행이 주는 특별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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