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지리산 바래봉] 사시사철 꽃 피는 ‘반란의 고향’서 시인들을 만났다

'산과 함께 100대 명산 순례', 남원 지리산 바래봉(1,165m).

김정삼 여행전문가 | 기사입력 2021/11/30 [06:54]

[남원 지리산 바래봉] 사시사철 꽃 피는 ‘반란의 고향’서 시인들을 만났다

'산과 함께 100대 명산 순례', 남원 지리산 바래봉(1,165m).

김정삼 여행전문가 | 입력 : 2021/11/30 [06:54]

▲ 사방을 둘러봐도 하늘 아래 산. 잔설이 듬성듬성한 평원은 억새가 곳곳에서 흔들린다.

 

[분당신문] 지난 28일 찾은 '산과 함께 100대 명산 순례', 남원 지리산 바래봉(1,165m). ‘산에 오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녀, ‘들었다’라고 하는 게지. 넉넉한 품이 그리우면 가라. 

 

최고봉 천왕봉을 예전에 다녀와서인지, 그보다 낮은 봉우리를 찾아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1박 2일 순례 여정. 

 

▲ 구례 피아골 ‘토지민박’

 

전날 구례 피아골 ‘토지민박’서 묵는 데, 시객들이 낭송을 하면서 술판을 벌였다. 한 잔 술도 받고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시집도 선물 받았다. 문단사 족적을 남긴 시인들의 이야기는 덤. 연거푸 마셔도 취하지 않고, 기타를 잡으니 옛노래가 땡기더라.  

 

지난 밤 꿈처럼 만난 시인들을 뒤로 하고 구례를 떴다. 남원 가는 길, 섬진강 안개가 그리 자욱할 줄이야, 멀리 지리산맥은 하늘 높게 평평하게 이어진다. 한 시간이 걸려 지리산 허브밸리 운지사 앞, 산 들머리에 도착하니 9시 40분.

 

▲ 문단사 족적을 남긴 시인들의 이야기는 덤. 연거푸 마셔도 취하지 않고, 기타를 잡으니 옛노래가 땡기더라.

 

봄 철쭉이 유명하다지만 제철에만 꽃이 있으랴. 이른 아침이라 길가 하얀 서리꽃이 한창이다. 꽃을 보려는 자, 마음에 꽃이 피는구나. 

 

정원석을 놓은 듯 국립공원 포장길로 천천히 올랐다. 1천 미터를 넘어서자 하얀 잔설도 보이고, 전나무 군락도 제법 굵은 허리를 자랑하는 데, 길바닥엔 1센티 두께 깡깡한 얼음이 밟힌다. 대낮 햇살이 따스한 것이지, 지난밤 꽤 추운 밤을 보냈으리라. 

 

▲ 길바닥엔 1센티 두께 깡깡한 얼음이 밟힌다.

 

푸른 평원 위 계단이 놓인 산마루를 따라 정상에 가볍게 오른다. 사방을 둘러봐도 하늘 아래 산. 잔설이 듬성듬성한 평원은 억새가 곳곳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목 놓아 부르다가 쓰러진 꽃아’라고 노래한 시인 오봉옥. 스무 살 때 읽었지, ‘지리산 갈대꽃’. 이십대 후반 의무처럼 매년 찾아가 종주하던 산, 그때마다 야속하게 여름안개로 가리고 제 모습을 내놓지 않았다. 오십이 넘어서야 ‘아들과 찾아왔다’고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인가. 

 

▲ 1천 미터를 넘어서자 하얀 잔설도 보이고, 전나무 군락도 제법 굵은 허리를 자랑한다.

 

아들 ‘산’은 ‘산을 품은 산’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산이 ‘포근하다’고, 따스한 햇살도 좋고, 굽이굽이 산세며, 옹기종기 사람들의 마을도 편해 보인다고 했다. 반란의 역사를 알면 또 달리 보이겠지. 

 

▲ 푸른 평원 위 계단이 놓인 산마루를 따라 정상에 가볍게 오른다.

 

아울러 여태 오른 100대 명산 중에서 '민주지산' 다음으로 '바래봉' 풍경이 좋다고 치켜세운다. 다만 겨울눈으로 덥히면 '지리산 천왕봉'에 밀릴 것이라고 냉정한 서열을 매긴다. 

 

4시간 여 오간 거리는 이십여 리 길, 100대 명산 순례가 끝난 후 반려견 ‘솔’과 다시 가기로 했다. 그 산, 넉넉한 품이 부른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