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녀의 죽음_02

니나처럼 그녀도 고향의 마지막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양성우 작가 | 기사입력 2019/04/02 [07:56]

러시아 미녀의 죽음_02

니나처럼 그녀도 고향의 마지막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양성우 작가 | 입력 : 2019/04/02 [07:56]

[분당신문] 허나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 목숨줄이란 건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를 하늘에 맡긴다. 이 명제를 부정한다면 그는 자기가 신이라 착각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자를 살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밤 만을 살리고 싶었다. 내게는 뼈아픈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러시아 여자였다. 원래 그런지, 아파서 그랬는지 정말 하얀 피부를 가졌더랬다. 40대의 젊은 나이. 난소암 말기. 포기하지 못하는 남편. 니나와 너무 비슷한 신파극같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적어도 거짓은 아니다.

그 때도 나는 중환자실 당직이었다. 새벽, 아랫 기수인 병동 당직에게 전화가 왔다. 좋아질 가망이 없는 말기 암 환자라 했다. 그런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중환자실을 내려 온댄다.

‘아니, 가망 없는 말기 암환자한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심폐소생술은 엄청난 외력으로 심장을 직접 주무르고, 복장뼈를 부러뜨리고, 목구멍을 통해 폐까지 관을 박아 넣는 공격적인 술기다. 말기 암환자에게 그런 고통을 가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 포기 못하는 남편이었다.

나는 병동으로 올라갔다. 다들 자는 고요한 새벽, 병동 처치실은 난장판이었다. 인턴 둘이 돌아가며 심장압박을 하고 있고, 남편은 살아나지 않는 아내 곁에서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통역에 의하면 더 열심히 계속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압박시간은 벌써 30분이 넘었고, 에피네프린, 비본, 수액 로딩 등 할 처치는 다 했다.

남편은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운명을 받아들이기에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죽을 것을 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의 반려자라 여겼는데, 젊은 날 자기를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은 몰랐을 터였다.

“사망 하셨습니다.”

통역은 내 말을 전했다. 남편은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러시아어로 중얼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통역은 방금 “꼭 집에 보내주고 싶었는데….” 라고 했다고 내게 알려줬다. 그게 무슨 소리냐 했더니 환자가 몇일 뒤 러시아 전원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니나처럼 그녀도 고향의 마지막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보호자는 반드시 그 업을 이뤄 주겠다는 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러시아 남자의 강한 목표의식을 경험했던 터라, 니나에 대한 내 의지 역시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니나는 원래 정적인 성격의 환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저녁이 되자 동물적인 반응을 보였다. 괴성을 지르고 몸을 뒤흔들고 협조가 되지 않았다. 보호자가 봤으면 놀라든 슬퍼하든 큰 충격을 줄 법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보호자 출입이 제한되는 중환자실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런 평소와 다른 모습이 느낌이 영 좋지를 않았다. 오늘 밤 버텨 내일까지 살려 낼 자신이 없었다.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을 못 넘길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니나의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닫고 자기 아내를 다독였다. 그들이 얼마나 오늘 하루를 원하는지 잘 알기에,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내가 얼마나 잘 아는지 그들이 알기에, 오늘 밤은 우리 모두에게 비장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고 있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은 잘 알았다. 하지만 싸움에서 지고 있어 속이 쓰렸다. 밤새 이리저리 써 봤던 약은 미비한 성과만을 이루고 있었다.

니나의 동물적인 반응은 이제 사라졌다. 내 생각이 맞았다. 아까 저녁의 거센 움직임은 마지막 몸짓이었다. 이제 혈압은 떨어지고 혈액의 산성화는 극도로 심해졌다. 정신은 완전히 잃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도의상의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들은 어디 가지도 않고 밤새 중환자실 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아버지는 들어오면서 딸보다도 나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내 어깨에 그 두터운 손을 얹고 탁탁 두들겼다. 수고했다는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의 어머니는 딸의 몸에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아버지는 곁에 서서 딸의 얼굴을 보며 길게 무언가 중얼거렸다.

“Мнетакжаль.Мнетакжаль.Я пыталсяотвезтитебядомой….”

가망 없는 환자가 죽었다면, 그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의사로서 유감일 지언정 미안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날 나는 니나와 그의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니나의 아버지를 옆에서 안고 영어로 말했다.

“I am so sorry.”

나는 영어의 sorry가, 미안함과 유감의 뜻을 같이 담은 단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끝 –

<본문의 러시아어는 같이 있던 통역을 통해 재구성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쓴 분당제생병원 내과 전공의 양성우 작가는 2019년 1월 청년의사가 주최한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에 이어 “시사문단’ 3월호에 수필「술꾼의 인생」, 「러시아 미녀의 죽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양성우 작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와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늦깎이 의사로써 문단에서도 뒤늦게 실력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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