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장애인 표시판과 하수구 옆 민주항쟁 표시석

내가 아닌 네가 되어 한번 쯤 생각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유일환 기자 | 기사입력 2021/02/14 [11:09]

찌그러진 장애인 표시판과 하수구 옆 민주항쟁 표시석

내가 아닌 네가 되어 한번 쯤 생각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유일환 기자 | 입력 : 2021/02/14 [11:09]

 

▲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애인주차구역 표시판과 먼지에 쌓인 채 하수구 옆에 세워진 민주항쟁 기념비.

 

[분당신문] 기자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평상시 길을 다니면서도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남들은 그냥 스쳐 지나갈지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한번 쳐다보거나, 왜 그런지를 한번쯤 더 생각하곤 한다. 이때 가장 먼저 적용하는 것이 내가 아닌 네가 되어 보는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소소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기사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사회적 약자 이동권 개선'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열심히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한 장애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수차례 분당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보도턱에 대한 개선을 수년 채 해주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실제로 동료가 보여준 '비가 오는 날 보도 턱을 피해 차로를 지나가는 사진'은 충격이었다.

 

이를 개선하자고 성남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함께 의견을 모았고, 더 나아가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노인, 어린이, 임산부, 유모차 등도 편안하게 다니는 보행로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수개월에 걸쳐 도로뿐만 아니라 건물, 상가 등을 뒤지며 경사로와 출입문 등을 점검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 1월 8일 성남시의회 윤창근 의장을 찾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이동권 개선(사회적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 지원)'에 대한 조례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장애인 편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열정에 찬물을 꺼얹듯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소가 발견됐다. 그곳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성남시청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었다.

 

기자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볼품없이 찌그러지고, 낡아 버린 장애인 전용 주차 표시판이었다. 내 눈(장애인)에는 보이지만 네 눈(비장애인)에는 보이지 않은 가장 깊숙한 곳에 허점이 발견된 것이다. 그동안 성남시청을 찾은 장애인들이 쏟아냈을 비난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앞은 허구헌날 성남시장이 관용차를 타거나 내리기 위해 수없이 지났던 곳이다. 그 많은 시간동안 단 한번도 이를 쳐다보지 않았거나, 봤어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현장에 답이 있다'라고 외치고, 입으로는 '적극 행정'을 말하지만 한상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랬던 것에 불과하다. 한번쯤 내가 사회적 약자라는 역지사지 (易地思之)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한다.

 

내가 어린이라면 화장실 세면대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장애인이라면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고, 좁은 출입구를 더 넓혔을 것이고, 내가 유모차를 끌고 간다면 울퉁불퉁 보도블럭을 개선하고, 볼라드를 저렇게 촘촘하게 박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또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성남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들의 이중성이었다. 성남민주화운동사업회는 2018년 12월 9일 6.10민주항쟁을 기념하고자 기념석을 구시청 앞 인근 삼거리, 종합시장 신흥역 주변, 그리고 상대원시장 등지에 기념석을 세웠고, 이후 가천대 앞에도 세워나갔다.

 

1987년 들불처럼 일어났던 성남시민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을 알려내면서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뜻 깊은 장소를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라본 기념석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민주에서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그 정신은 땅 바닥에 버려진 하수구 옆 먼지에 쌓인 기념석을 보는 듯 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지금 그들이 가진 기념석에 대한 의미가 이 정도일진데,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명절을 앞두고 성남시청 광장에 위치한 소녀상에게 설빔을 입혀주는 행사가 있었다. 너무나 대조적인 장면이다. 

 

올해가 광주대단지사건 발생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성남시는 수십억원을 들여 새로운 명칭 공모 등 추진사업회를 꾸려 대대적인 행사를 하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두가지 사진을 보면서 혹시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맨날 오르내리는 시장도 쳐다보지 않는 장애인 주차구역 표시판이 찌그러지고, 민주주의 현장에서 싸웠던 그들조차 기념석을 대하는 것이 저 정도인데, 관 주도의 광주대단지기념사업은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다.  네가 아니라 너무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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