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특집] 무너진 거버넌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시민의 권리를 선언합니다

양재연(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 선임대표·성남교육희망네트워크 위원장)

분당신문 | 기사입력 2026/05/10 [09:53]

[6·3 지방선거 특집] 무너진 거버넌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시민의 권리를 선언합니다

양재연(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 선임대표·성남교육희망네트워크 위원장)

분당신문 | 입력 : 2026/05/10 [09:53]

▲ 양재연 성남교육희망네트워크 위원장

[분당신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요즘 방영되는 어느 드라마가 제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저만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도, 성남시민단체 연합 등 수많은 단체의 활동가들도 모두 그 지독한 ‘무가치함’과 싸우고 계실 겁니다.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채 자동차 기어를 파킹에 놓고 액셀만 밟아대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저 역시 20년 가까이 마을과 학교를 위해 뛰어왔지만 거대한 행정의 벽 앞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허탈함을 겪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허탈함은 우리 개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시민을 파트너가 아닌 통제와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해 온 ‘거버넌스 붕괴’가 만들어낸 폭력입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마을의 역사와 시민의 절박한 목소리가 오만한 행정적 결정 한 번에 지워지는 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해 왔습니다. 이 무기력함은 결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의 이 위기가 그저 민선 8기만의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어느 정당이 권력을 잡든 정치권은 '거버넌스'를 선거철마다 꺼내 드는 화려한 포장지로만 소비했습니다. 보수는 예산과 효율을 핑계로 시민의 자리를 지워버렸고 성남형교육지원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익지원센터, 여성비전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등 등. 시민의 귀중한 자산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아니, 그들 뒤의 민주·진보는 어땠습니까. 실질적인 권한은 내어주지 않은 채 시민사회를 행정의 들러리로 세우고, 거버넌스를 정치적 전리품으로 소비했습니다. 이제야 선거철이 오니 시민의 마음을 가지려 애 태우고 있습니다.

 

그 참담한 결과가 바로 오늘, 소통의 탑이 무너진 성남의 모습입니다.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고 하면서 정작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는 사회의 또 다른 폭력 앞에 더욱 좌절하게 되고, 탄천의 생태계는 훼손되며, 건강·교육·돌봄·생활의 불평등은 매일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어이 절망을 털고 당장 달려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2014년의 그 바다를 잊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회가, 국가가 아이들을 구조하지도 못하고 그저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그 지독한 트라우마가 지금도 발목을 잡고 숨통을 조여 옵니다. 

 

이태원에서, 12·3비상계엄선포와 국가내란사태. 또다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 온몸이 깎여나가는 진흙탕 같은 나날에도 우리가 기어이 다시 달리자고 서로를 독려하는 이유는 – 그때처럼 우리 앞에 놓여진 아이들을 유기하는 뼈저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정서적 고립에 시달리고,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이웃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멈추면, 시민의 삶이 무너집니다. 오늘 우리의 제안은 구걸이 아닙니다. 도시의 진짜 주인인 시민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성남연대는 세 가지 핵심 요구를 민선 9기 앞에 강력히 제시합니다.

 

첫째,  [교육·돌봄·관계의 복원] : 성남형교육지원단을 복원, 민·관 교육협력 협의체 법제화. 주민자치 실현,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다시 주민의 품으로, 마을이 함께 아이들의 정서를 보듬을 수 있도록 학교폭력 피해가정에 대한 장기 지원 시스템 구축, 마을돌봄센터를 중심의 교육·돌봄·관계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통합돌봄 협의체 구성.

 

둘째,  [의료·건강·환경의 복원] :  성남시의료원 정상화(건강 불평등 해소), 탄천미래발전위원회 등 시민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환경 정책 수립ㆍ사업 추진 과정에 실질적 반영.

 

셋째,  [경제·성평등·민주주의의 복원] : 사회연대경제 혁신타운을 조성, 성평등 정책 총괄 컨트롤타워, 여성비전센터 복원, 민주역사를 기록·계승, 시민사회 연대 공간 마련.

 

거버넌스는 행정이 베푸는 시혜가 아닙니다. 지역에 생기를 돌게 하는 심장이고 혈맥입니다. 비록 기어를 파킹에 놓고 헛발질하듯 밟아대는 미련한 소진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이 치열함이 우리 아이들과 이웃을 지켜낼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될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무겁고 시린 발걸음을 다시 굳건히 내디뎌, 성남의 내일을 시민의 시간으로 되찾아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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