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태 형! 오늘, 기분 좋았겠다" … 김종태 민주열사 46주기 추모식, 120명 대규모 5.18민주묘역 찾아

유일환 기자 | 기사입력 2026/06/07 [16:20]

"종태 형! 오늘, 기분 좋았겠다" … 김종태 민주열사 46주기 추모식, 120명 대규모 5.18민주묘역 찾아

유일환 기자 | 입력 : 2026/06/07 [16:20]

 "내 작은 몸뚱이를 불사질러서 국민 몇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몸을 던지겠습니다."(김종태 열사의 글 중에서) 

 

▲ 광주 5.18민주묘역에서 영면하고 있는 김종태 열사를 찾았다.

 

[분당신문] 1980년 6월 7일. 김종태 열사의 동생 김종수(66)는 당시 형의 행동을 보고 "아, 죽음을 결심했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날은 김종태 열사의 23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죽음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형의 후배들과 함께 말렸다. "그 당시 성남에서 가장 번화가는 종합시장쪽이었고, 그래서 그곳에 가지 못하게 밤새도록 말렸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태 열사는 밤새도록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말리려는 동생들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김종태 열사는 9일 성남이 아닌, 서울 이대 앞 사거리에서 '광주 시민 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라고 적은 성명서를 뿌리며 분신을 결행했다.    

 

온 몸을 하얀 붕대에 감긴 채 고통스러워 하던 형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김종태 열사는 분신 5일만에 영면한다. 

 

그렇게 김종태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난지 46주기. 6월 6일 아침 7시 30분. 올해도 변함없이 은행동 제일실업 야학을 함께하던 대학생 선생님과 동네 후배들, 그리고 열사의 친구, 시대를 함께했던 이들이 삼삼오오 야탑역 척병원 앞으로 모였다. 변함없이 매년 6월이 되면 찾아가는 광주 5.18민주묘역이었지만, 올해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 제46주기 김종태 민주열사 추모식에는 120여 명이 참석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가용 한 대로 광주를 찾았고, 이어 봉고차로, 다시 버스 한대로, 매년 김종태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모아 왔다. 그런데, 지난 5.18 민주화운동 성남기념식이 열렸던 성남시의료원 앞 숯골문화마당에서 김종태기념사업회 한덕희 회장은 약속했다. "이번 김종태 열사 추모식에는 성남시민 모두를 초대하겠다"고 말이다.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주민교회, 주민신협, 얼수농장, 성남제화소 공인두더지협회, 세무법인 청담, 아시아고속관광 등에서 물심양면 도와주더니, 참가자들이 서슴없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았더니 참가자는 모두 120여 명에 달했다. 드디어 대형 버스 4대가 성남출신 민주열사 김종태 46주기 추모식을 위한 대규모 추모단을 결성해 김종태 열사가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역에 도착했다. 

 

이날 참석자 모두가 5.18민중항쟁 추모탑에서 광주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에 대한 묵념과 헌화, 참배를 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김종태 열사가 영면하고 있는 묘역에서 묵념과 이주형 담임목사의 기도, 그리고 헌화 및 헌주를 진행했다.

 

2부는 김종태열사기념사업회가 마련한 행사로 한덕희 회장의 기념사, 여주 동학농민 혁명기념 사업회 김일섭 이사장의 추모사, 들꽃누리 중창단의 추모 공연, 그리고 이날 함께한 김종태 열사의 유가족은 "오늘, 종태형 기분 좋았겠다!"라고 외치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불렀다. 

 

한덕희 회장은 "김종태 열사가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성남 야학에서 노동법을 배우며 낮은 곳의 이웃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그의 따뜻한 연대 정신은 4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라며 "노동이 존중받고, 상식이 승리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멈추지 않고 전진하겠다"고 전했다. 

 

▲ 김종태 열사 가족과 주민교회, 성남시민단체 대표와 참배단이 묵념하고 있다.

 

김종태 열사는 19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유신 잔당들은 전원 퇴진하라, 계엄령을 해제하고, 군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끝내 14일 운명했다. 당시 나이 22세였다.  

 

그가 외친 메아리는 광주에서 희생된 인물을 제외하고 특별하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인정한 인물로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 영면을 취하고 있다.  성남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리고자 산화한 성남시민'으로 인정하고, 그의 뜻을 기리고자 매년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으며, 성남의료원 앞 숯골문화쉼터에 '김종태 열사 오월 걸상'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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